벌써 30여년이 지난 옛 일이지만... 한 때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PC 통신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고, '잡문'이란 이름으로 이것저것 되는대로 끄적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책 머리에 "시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산문도 아닌, 그러나 시와 산문의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긴장한 흔적들을 모아 감히 <잡문>이라는 문패를 내다건다. 이 풍진 세상에 그마저도 황송한 일 같아서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내가 그 시절의 나에게 멋쩍어진다.
그가 3년간 트위터에 올린 1만여개 글들 중에 244꼭지를 추려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보통의 책에서 상단에 각 페이지별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 것 외에 왼쪽 하단에도 페이지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는 거다. 위의 쪽수보다 12가 많은 아래 쪽수는 책의 앞표지와 연지를 제외한 그림이 있는 속표지부터 사잇종이, 책에 관한 정보를 담은 페이지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인상적이다.
내가 보기엔 시에 가까운데, 일반적인 시의 형식에서는 벗어난 메모와 같은 느낌도 있어서 그런 지... 시인 스스로 <잡문>이라고 칭한 244개의 글에는 제목이 없다.
그래서, 그 중에 내 마음에 들었던 글들을 (상단에 적힌)쪽수와 해당 글의 앞 부분 일부만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간단히 읽은 감상평을 하자면.... 짧아서 부담없지만 가볍지 않고, 중간 중간에 곱씹게 되는 부분도, 피식 웃게하는 부분도 있어서 좋았다.
16
절벽이 가로막아도 절망하지 않는 강물처럼
19
꽃이 입이 없어서 말 못하는 줄 아나?
52
낡아가는 것들이 아름다운 건
53
나는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는
130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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